갤러리 블랭크는 2015년 10월 16일(금)부터 11월 30일(월)까지 <축척 : Accumulation>을 테마로 한 첫 번째 기획전을 개최한다. < 추적된 화면 · Tracked Picture >의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사진과 회화 두 가지의 매체를 섞어 특정한 장소의 잊혀진 이야기를 추적하며 사진 속 회화, 사진 속 사진의 프레임을 동시에 제시하는 전리해 작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관련한 전시평문, 작업노트, 인터뷰와 함께 전시기간 중 에피소드도 공개될 예정이다.

 

오래된 건물의 벽면의 긴 시간 자리를 지키며 그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남아있다. 조금씩 쌓여가는 흔적들 속에는 오묘한 색이 나타나고, 모호한 형태가 추상 회화를 연상시키며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전리해 작가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학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작가로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재개발을 앞둔 오래된 재래시장 안 작업실을 얻었고, 그곳 옥상과 골목길을 산책하며 우연히 마주한 시간의 흔적에 매료되어 시간과 장소, 기억을 테마로 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전리해는 쉽게 지나쳐버리는 물건 또는 장소, 버려진 것들, 무심히 지나치는 것을 관찰하고 다시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작품을 시작한다.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서 받은 영감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런 사고의 과정을 회화나 사진을 통해 숙성시키고 공공의 장소에 덧대어 놓음으로 중첩되는 이미지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작품 속 장소는 대구의 남산동, 북성로, 서성로 등으로 모두 작가가 머물렀던 곳이다. 현장에서 받은 순간의 인상을 스냅촬영, 메모, 드로잉으로 남기고, 두툼한 장지에 한국화 물감, 먹물, 커피 등의 재료를 사용한 색면 페인팅을 현장에 설치, 최종 사진으로 완성되었다. 반면 각자가 지켜야할 위치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진 속 사진 작업은 그 현장에 작가가 직접 퍼포머로 등장해 시위하듯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주변을 조금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가까이 존재하는 것들이 말해주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잊혀진 장소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소외된 지역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의 기억과 개인사, 역사에 대해 알리는 작업을 음악, 연극 등의 다른 분야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잠시 짬을 내어 휴대폰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조차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여유를 내어 잊혀진 것들, 함부로 여겨온 것들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담은 전리해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 보자. 비, 바람, 먼지가 남긴 아련한 흔적을 따라 각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