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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 artvas  |  개설일 : 2010.02.18  |  소개글 : 세상의 꿈과 소통하는 예술공간 아트바스
Art of Africa 아프리카 미술_ 이미지ㆍ자료 제공 |
artvas | 10-02-18 23:47:33

 

 

Art of Africa

 

 아프리카의 색은 참으로 밝다. 흰색도 밝고 검은색도 밝게 보인다.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로 끌어내린 신들의 중심에 인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성전(聖殿) 없고, 성전(聖典) 없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사하라사막의 이남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조상신을 섬기는 조그마한 제단이나 계율은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을 고통으로 선택하게 하는 거대한 성전이나 율법으로 인간을 가두는 성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을 믿지만, 신을 절대화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신성(神性) 인간의 심성(心性)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조각이나 그림에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신보다는 신앙을, 이데올로기보다는 이데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다운 인간,
그런 존재이유를 보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참으로 보고 싶은 때이다.

 

아프리카미술관 관장, 철학박사 정해광

 

 

| 객원기자 박지현                           
이미지ㆍ자료 제공 | 아프리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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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 응구기(Peter Ngugi) 케냐, 190x130cm, 캔버스에 아크릴과 혼합재료  

 

 


인간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 관계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예술 분야는 아프리카 미술이다. 종교적인 의미보다 인간을 상징하며 그 인간 속에서 관계뿐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우리는 아프리카 미술을 통해 엿 볼 수 있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재를 가장 중요시하였기에 그들의 예술에는 늘 사랑이 꽃 피워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 또한 부자인 사람들이 창조해 내는 예술의 향연들을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며 이해할 수 있다.

          ▲ 피터 응구기, 케냐, 150x75cm, 캔버스에 아크릴과 혼합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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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 수쿠(Suku)족 9cm

 

 아프리카 미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통 조각에서부터이다. 그들의 생활 풍습과 사상 그리고 이를 통틀어 일컫는 문화를 쉽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전통 조각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이다. 이를 통해 그들의 생활 사상까지 엿봄으로써 현재 활동 중인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 성향까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주된 공통 특징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모두가 목이 길다는 것이다. 하늘을 향한 길쭉한 머리는 신이 인간 세계로 내려오게끔 하는 계단과도 같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에게 가까이 가거나 신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게 하는 탑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고 그들과의 관계 형성이 핵심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미술인 것이다. 그러한 관계 형성에 있어 생명은 그 어느 것으로도 끝낼 수 없는 신앙 혹은 이데아 같은 말이다. 희망을 포기한다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을 잘 드러낸 것이 바로 생명의 잉태와 관련된 조각이다.

 

 

 

 

 

 

 

 

 

 

 

   
▲ 의자. 말리 도곤족(나무) 27cm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전쟁과 질병 그리고 기아가 만연한 비극의 땅이라고 이야기한다. 비록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것을 잠시 스쳐가는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하는 반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바라는 조각들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되고 그것들 중 임신을 하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는 조각만으로도 새로운 생명을 알리는 조각들이 아프리카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희망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에의 끈을 희망과 직결시키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이를 인간의 존재의미와 동행시키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우리'라는 단어는 생명의 근본과도 같은 말로써 모두가 함께 하나 되는 그물망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은 관념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도구나 그림 그리고 조각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에서 무의식적인 학습을 통하여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이러한 관계들 중 가족의 소중함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있다. 녹록치 못한 아프리카라는 현실에서 부모는 자식을 보듬고, 자식은 부모와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가족 즉 친족 체계는 살아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수직적으로 확대되기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문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들과 동물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화적인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이나 동물들을 문 조각에 새겨 넣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깊은 자긍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열고 닫는 문을 통하여 무의식적으로 역사적인 소속감을 학습하게 하고, 뿌리 의식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문 조각은 마치 족보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은 현재의 사람들과 존재의 뿌리가 되는 조상신을 연결시키는 거룩한 수단인 것이다. 사자(死者)의 경우 그들의 시간은 과거에 있지만 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산 자와 결합된다. 그래서 사자는 살아있는 사자로서 가족의 일원이자 친족의 일원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먹거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식의 과정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 관계 형성의 의미는 잔이나 성찬 조각에서 부여된 의미를 통해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해 인연의 끈을 인륜으로 실천하는 무대라 할 수 있는 부부의 관계이다. 그러나 간혹 이들 부부간에 문제가 있을 때 사용하는 잔이 있다. 그 잔에는 구멍이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개의 구멍은 부부간 역할의 다름을 뜻한다. 그러나 입구는 둘로 되어있지만 안쪽에서는 하나로 통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하나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같은 점, 즉 서로를 사랑한다는 전제하에 다름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 부부의 길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주로 잔에 새겨져 있는 인간과 동물의 형상은 조상신과 종족의 기원이 되는 신성동물이다. 그런 잔을 들고 나와 화해를 청하는 것은 자기반성과도 같은 일이 되기도 한다. 부부 중에 어느 한쪽이 먼저 잔을 들고 나오면 굳이 화합 주를 마시지 않더라도 둘의 앙금은 쉽게 풀릴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잔 조각은 한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 문. 말리 도곤족(나무) 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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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인들의 전통조각에서 기인한 인간 존재의 의미,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가가 케냐의 키부티이다.
키부티(1947~ )는 세계 미술계에서 탄자니아의 릴랑가(Lilanga)와 함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케냐의 작가로 손꼽힌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키부티는 비누와 목탄 판매로 생계를 꾸리다가 사파리의 요리사로 일하게 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에 불과했던 그림은 그가 29살이 되던 해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저자 카렌 블릭센을 만나면서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키부티는 인간과 자연의 의미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 그 모습을 독특한 색채로 풀어내고 있다. 몇몇의 서양 평론가들은 그를 “단순하게 살며, 단순한 작품을 만드는, 단순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키부티는 자신의 뿌리인 아캄바(Akamba)족의 일상과 설화를 오랫동안 그려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미술계의 흐름과 콜렉터들의 취향에 부합되지 않는 색연필과 잉크를 고집한것도 결국 그의 독자성과 순수한 심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키부티는 ‘초자연(supernature)’ 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초자연은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신과 관련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먼저 교화되었기에 동식물을 아우르고 가르치는 특별한 사명을 지녔다고 한다. 인간 간은 물론 인간과 자연과의 하모니(harmony)를 추구하는 것, 그것을 인간과 자연의 존재의미로 부각시키는 것이 초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초자연의 내용은 서로 다른 세계들 간의 하모니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고픈 하이에나에게는 먹이를 주며 남의 먹이를 함부로 뺐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이에나는 먹이 때문에 인간의 곁에 머무르지만,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인간을 지켜주는 관계로 전환된다. 이때 하이에나는 초자연이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서로 하모니를 이루기 때문이다. 키부티는 낮잠을 자고 있는 개를 응시했다. 개의 조상에 관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초자연의 범주는 식물에게까지도 확대된다. 키부티의 시선이 나무로 향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나무에는 새가 앉아 있고, 주변에는 인간과 동물이 있다. 간혹 나뭇가지를 이고 가는 원숭이도 보인다. 나무는 동물에게 휴식처를 그리고 인간에게 땔감을 제공한다. 그래서 나무는 초자연이 된다. 주변의 모든 것도 초자연이 된다. 나무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인간과 동물은 나무의 씨를 널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키부티는 우리들의 세상에 나무가 없어지는 이유는 균형이 한 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란다. 결국 하모니다.
 초자연의 궁극성은 땅에서의 평화이기도 하다. 키부티는 물이 충만한 곳에서 인간과 동물이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땅과 하늘을 연결시킨 물이 바로 초자연이 되는 순간이다. 보라색의 땅은 초록색으로 감사해하고, 나무는 잎으로 감사해하고 그리고 흩어진 동물들은 한 곳으로 모여짐에 감사를 드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감사를 드리는 평화의 세계 즉 초자연이다. 키부티를 가슴 벅차게 하는 것, 평화가 바로 키부티의 궁극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키부티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키부티 음부노> 45x60cm, 종이 색연필, 케냐  

 

 <키부티 음부노(Kivuthi Mbuno)> 97x67cm, 종이에 색연필, 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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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랑가Geroge Lilanga>,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탄자니의 릴랑가(1934~2005)는 나무 조각에 다양한 색을 칠하면서 해학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그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조각에서 표현하기 힘든 형태의 유연함을 그림에서 찾고 그것을 삶과 의식에 적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릴랑가의 그림 역시 인간 중심에 대한 세 가지 코드가 있다. 첫째는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구(Shetani-쉐타니)를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식 표현을 빌리자면 쉐타니는 악마이고 동양식으로는 도깨비이다. 그러나 쉐타니는 악마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 큰 귀와 입 그리고 볼록 나온 배는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고픈 마음의 모습일 뿐 이다. 그런 점에서 릴랑가는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경계한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개개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귀와 입을 크게 표현하였고 올챙이 같은 배는 공동체의 이익만큼이나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욕구의 긍정은 삶에서 의지와 직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릴랑가의 쉐타니는 영감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둘째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조화와 결속은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릴랑가는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고 형태를 더욱 유연하게 함으로서 전통을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그러한 색체와 형태를 통하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도 하였다.


 "아프리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슬플 수도 있지만 행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의 무관심이 오히려 삶을 즐겁게 만들 수도 있다." 셋째는 삶에 대한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피코라는 춤을 추고 있다. 마피코는 춤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대상을 뜻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마콘데족의 성년식에서 마피코를 향한 젊은 남녀들의 격렬한 몸짓은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였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는 삶의 의지와도 같다. 그런 점에서 릴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삶에 대한 역동적인 태도를 강조하기위해서이다. 이런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의 삶과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피코의 의식은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고도의 드라마와 같은 것이 된다.

 

 

 

 

 

 

 

 

 

 

 

 

 

 

 

 

 

 

 

 

      

        <아산닝Assan Gning>45x66cm,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세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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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인의 전통에서 현대를 소망하는 움직임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더욱더 확장시키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 중심, 존재의 의미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형성 뿐 아니라 미래에의 의지와 생명력을 대변하기까지 한다.


 카툰(1973~ )은 대부분의 케냐 작가들처럼 와두 (Sane Wadu)가 미술운동을 전개한 응제차(Ngecha)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목탄이나 연필에 불과했지만, 그런 재료를 오랫동안 사용한 것은 오히려 기본기를 다지는데 유용했으며 그림에의 열망을 키워나가는데 촉매로 작용되었다. 카툰의 그림은 얼핏 전통을 계승한 것 같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분히 현대적이다. 사회 공동체보다는 가족의 화합이나 소통, 남녀의 사랑이나 개인의 욕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에 대한 관념 역시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프리카인들은 전통적으로 흰색을 신의 색이라 여긴다. 흰색의 연기는 신의 숨결이라고까지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카툰에게는 흰색이나 붉은색은 더 이상 신이나 인간을 대변하는 색이 아니다. 그에게 색은 그저 색일 뿐이다.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나가는데도 본능에 충실할 뿐인 것이다. 세계미술계가 카툰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카툰의 그림에서 보이는 큰 손과 큰 발은 삶에 대한 태도와 의식의 내용이다. 손과 발이 유난히 큰 카툰의 그림은 아프리카 앤티크 조각에 나타난 의미와 궤를 같이한다. 큰 손은 부지런한 생활을, 큰 발은 안정적인 생각을 뜻하는 것으로서 한 집안의 가장이나 지도자가 지녀야 할 윤리적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큰 손에서는 삶의 태도를 큰 발에서 의식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툰이 꿈꾸는 희망 뿐 아니라 아프리카 인들이 꿈꾸는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보이는 다양한 문양이나 동일한 문양의 반복은 카툰이 지닌 꿈과 비례한다. 카툰에게 있어 문양은 문자와도 같기 때문에 그림에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은 그만큼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의 희망은 서로 다른 세계들 간의 어울림이다. 동일한 문양을 반복해서 패턴을 형성시킨 것도 결국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4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케냐, 카툰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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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객원기자 박지현/ 이미지ㆍ자료 제공 | 아프리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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