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상과의 동침을 선포하다
-콜래보레이션, 스타일 경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
# 콜래보레이션-브랜드 중독을 이기는 항체 바이러스
예술과 산업 간 협동, 공동연구, 협조의 움직임이 거대한 움직임이 되어 경제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바로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 시에 브랜드 자체의 역사성과 스토리 텔링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갑을 연다. 감성과 스타일이 경제담론의 화두가 된 요즘, 기존의 경쟁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시장은 포화상태를 넘어 성장 제로를 향해 달려간다. 시장을 미세하게 쪼갠 후 갖가지 마케팅 수단을 동원해도 소비자는 걸려들지 않는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제조업을 구원한 것이 브랜딩이란 이름의 마법이다. 브랜드란 원래 서부 개척 시대, 광대한 목장에 함께 방목시켜놓은 소들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표시하기 위해 찍는 ‘불도장(brand)’을 뜻했다. 제조업체들은 하나같이 제품의 편익과 속성, 문화와 가치관을 아우르는 상품의 개성을 찍어냄으로써, 경쟁사와 차별화 되는 자사 제품만의 이미지와 인식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기업의 브랜딩 노력도 성숙화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약발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협력의 경제학이다. 콜래보경제학이라 불리는 이 협업의 경제학은 콜래보레이션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다. 경제학은 결국 시장의 역학구도를 읽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여 시장 내부의 소비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아티즌(Artizen: Art 와 Citizen의 합성어)이라 불리는 이들은 패션과 스타일의 개념으로 충만한 집단이다. 깐깐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소비자 군이다. 어지간한 자극과 영감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들은 트위터와 블로그에 접속하며 서로의 몸과 인식을 엮는다. ‘뜨는 것’과 ‘지는 것’이 순환되는 속도의 어지러움을 즐기는 이들. 고가와 저가시장을 넘나들며, 도시적 쉬크(Chic)를 찾는다. 최근에 경제사전에 등재된 용어들을 한번 보라. 와인의 맛을 평가하고 권하는 소믈리에는 책과 쇼핑에까지 촉수를 뻗고, 소비 큐레이터는 마치 미술관의 그림을 정렬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터처럼 각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 이제 걸맞은 브랜드 상품을 권유한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가치지향적이며 보수적인 소비성향을 갖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가 디자인한 푸마의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대형할인점 앞에서 줄을 선다. 영감과 예술성을 확장시킨 제품에 대해서는 언제든 지갑을 열지만 기존 상품에 대해서는 공동구매와 정보탐색을 통해 가장 싼 제품을 산다. 이들은 성별과 지역 같은 기존의 고객 세분화 요소로는 걸러낼 수 없다. 현재 기업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아티즌들의 기대지평을 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적과의 동침이다. 내게 없는 능력을 가진 파트너와 손을 잡고 동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동종 혹은 타 업종의 디자이너와 브랜드,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전에 볼 수 없었던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콜래보레이션이다. 산업 전반에 퍼지기 시작한 ‘협업의 논리’는 바로 아티즌의 소비자행동에 대한 시장적 대응이다.
# 콜래보레이션-패션과 미술의 만남에서 전 영역으로
콜래보레이션의 확산 속도와 범위가 심상치 않다. 패션과 미술의 만남을 넘어 최근에는 위스키, 제화, 화장품, 소비가전, 자동차, 모바일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깊이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콜래보레이션의 역사는 패션에서 시작된다. 패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세 말기부터 복식은 인간의 차별화를 위해 사용되었다. 패션에서의 콜래보레이션은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옷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진 19세기 말부터, 이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산업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사회 공동체를 파괴시킨다고 믿었던 윌리엄 모리스는 당시 조악한 품질의 옷에 예술의 힘을 가미, 인간의 감성과 손의 느낌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구스타프 클림프를 중심으로 한 빈 분리파의 공방에선 화가인 클림트가 패턴을 뜨고 그의 파트너였던 패션 디자이너 에밀 플뢰게가 재단을 했다. 클림트의 제자였던 화가 에곤 쉴레 또한 남성복과 여성용 슈미즈를 디자인했다. 근대에 들어와 패션디자이너 샤넬은 당시 기능주의 건축양식과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박스형태의 실루엣 의상에 녹여냈다. 시대를 풍미한 샤넬 수트에는 시대를 대변하는 요소들이 자연스레 엮여있다. 1920년대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이었던 살바도르 달리의 만남은 미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첫 출발점이다. 달리는 스키아파렐리의 옷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이 디자인한 보석을 그녀의 컬렉션에 더하곤 했다. 이후로도 패션과 미술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이미지나 소재를 차용하며 독창성의 흔적을 남겨왔다. 현대 명품 브랜드 시장 규모는 년간 157조원에 달한다.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위기의식으로 흔들린다. 기존의 패션상품논리로 럭셔리의 환상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의 잇백은 중국에서 생산된 ‘장인의식’을 상실한 제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속앓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 ‘고유성’을 빌리는 일이다. 일본의 앤디 워홀 무라카미 다카시가 루이비통을 위해 일본의 상징인 벚꽃을 도상화한 ‘체리 블로섬’ 가방을 디자인 한 것이다. 화가의 팝 아트적 세계를 차용, 루이비통 이미지의 고루함을 벗고 젊은 층을 공략했다. 이외에도 프라다가 자신의 뉴욕 소호 매장의 월 페이퍼 작업을 영국의 블루칩 작가 데이언 허스트에게 맡긴 것은 예술가의 ‘아우라’를 빌려 이미지의 교착상태를 넘기 위한 한 예일 뿐이다. 콜래보레이션은 현재 산업 전 방위에서 맹위를 떨친다. LG전자는 화가 하상림의 꽃을 냉장고에 덧입혀 일상의 무료함이 지배하는 주방의 분위기를 깨웠고 최근 발표된 ‘엑스노트 마이클 코어스 에디션’은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디자인한 X300 전용 메신저 가방을 함께 내놓음으로써 이탈리아 패션의 장인의식과 첨단의 감각적 스타일을 동시에 반영했다. 하이힐을 소재로 삼아 현대 소비사회의 물신주의를 고발해온 작가 박영숙은 금강제화와의 협업을 통해, 핸드백에 자신의 아이콘을 입혔다. 협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화가 이현세는 페르노 리카 코리아와 함께 임페리얼 위스키의 국내 탄생 15주년을 축하하는 병 라벨 작업을 마쳤다. 리더십과 개척자 정신, 황제의 위용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각인한 이미지는 바로 메탈릭 실버 칼라의 용의 이미지였다. 브랜드가 화가와의 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한킴벌리는 작가 로리 킴과 함께 자사의 순면 커버 생리대 ‘애니데이’를 이용 제작한 설치미술작품 ‘새 날들의 아침’을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작가 스스로 친환경을 테마로 지속적인 작업을 해온 터, 브랜드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이룰 부분은 충분했다. 아모레 퍼시픽의 설화수 프로젝트도 눈에 띠는 좋은 예다. 보석 디자이너 홍수원과의 협업을 통해, 여성이 갖고 싶은 다양한 화장품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콜래보레이션, 그 너머로 가기 위하여
콜래보레이션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시장수요에 대응하려는 기업과 예술가의 연계 프로모션은 한층 속도를 내며 무르익고 있다. 서로의 속살을 드러내며, 함께 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는다. 문제는 산업계가 무분별하게 동참하면서, 협업이 지켜야 할 가장 큰 본령을 잊는 것이다. 제품과 아티스트 간의 정신적 교집합이 없이, 트렌드에 맞춰 급조된 전시나 공동협력이 늘고 있다. 초기의 콜래보레이션은 ‘적과의 동침’을 통해 새롭게 시장을 창조하는 마켓 주도형(Market Driving) 전략이었지만 최근에는 시장에 끌려가는 양상도 보인다. 여기엔 상표 자체의 유기적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한 ‘브랜드 퍼스낼리티(Personality)작업이 부재하기 쉽다. 진부화된 브랜드에 참신한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예술가의 아우라와 영감을 빌리는 작업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이름만 믿고 섣불리 자사 제품의 속성과 부합되지 않는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반드시 협업 이후 자사 브랜드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측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시장 데이터를 중심으로, 신규 상품에 이끌린 고객군을 세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래야 경영적 선 순환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콜래보레이션의 과열 양상을 막고 마케팅 전략의 일부로 편입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패션과 미술의 만남이, 전 산업의 표면으로 이식되는 지금, 단 시일 내에 열기가 식는 유행이 아닌 장기적 클래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