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ild-like Memory - 정희기展 』
Jung Higi Solo Exhibition :: Craft
▲ 정희기, Together,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전시작가 ▶ 정희기(Jung Higi)
전시일정 ▶ 2015. 02. 16 ~ 2015. 03. 13
관람시간 ▶ Open 12:00 ~ Close 18:00(일요일 휴관)
∽ ∥ ∽
미나 아뜰리에(MINA ATELIER)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773-8
T. 02-595-2455
blog.naver.com/happyllm
● 상실‘들’에 대하여.
★최다정
먼저, 사적인 이야기 하나를 더듬어야겠다. 사진을 찍던 정희기가 어느 날 인형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왔다. 그녀는 자신의 오래된 사진 속에서 시간의 표지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기억의 회로를 돌려 정지해본 적이 있을 법한 유년의 어떤 순간.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속에서 늘 동행했던 ‘코코’라는 이름의 인형을 포착했다. 그녀와의 수다에서 나 역시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인형의 형상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부러 인형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끝내 자라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애착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은 감각일 것이다. 그리고 정희기는 애착이 무엇에서 기원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것 대신 한 시절 친밀했던 대상을 현재의 자리에 포개놓는다. 언젠가부터 필요 없어져버린 혹은 자연히 잊혀져버린 인형을 상실이란 이름으로 호명한다. 이미 인형에 대한 애착이 어떤 상실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그 인형을 지금 다시 응시함으로써 상실한 것으로부터 또 다른 상실‘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코코’가 아닌 기다랗게 늘어난 팔과 다리, 천 조각들로 구성된 피부, 표정 없는 얼굴, 평면화 된 몸을 가진 제각각의 코코‘들’ 사이에서 낯설고도 닮은 우리의 기억 속 대상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숨어있던 상실들을 복기할 수도 있다. 솜인형처럼 말랑말랑해진 기억 속을 유영하는 일은 크게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뭉뚝하게 재현된 과거의 정황들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이 서늘하고도 따뜻한 마주침 그 자체를 우리의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싶어질지 모른다. 피해갈 수 없었던 애착의 대상은 불결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솔직히 사랑스럽기도 하다.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실‘들’을 바라봄으로써, 기원이 아닌 흔적들을 수집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판단은 당분간 유예될 것이다.
▲ 정희기, 발라당 나오미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사막여우 & 파랑새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봄을 춤추는 고양이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샤뿡 & 벗곰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때꺼우 & 미루쿠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작가노트 | 생각해보면 나는 곰돌이라는 이름의 인형을 마지막으로 인형과 멀어지게된 것 같다. 일정 나이가 되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해서는 안될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조건이 되면서부터이다. 늘 침대 위를 차지하고 있던 인형의 자리는 서랍장 안이나, 장롱 안 깊숙이, 혹은 단순히 방을 꾸미는 장식품쯤으로 바뀌게 되었다. 내게 위안을 주었던 존재가 먼 추억으로 남겨졌고, 한 순간 배신을 당한 인형들의 섭섭함이 상상되곤 했다. 그들의 감정을 증거할 만한 상황은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가끔은 그 미안함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름, 성격, 감정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감정이 이입된 사물이라는 점에서 인형을 멀리하게 되고 인형을 잃어버리면서 마치 나 자신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형은 매일 밤 잠이 들때면 그날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던 내 감정의 주머니 같았다.
2013년 겨울, 나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어린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잃어버렸던 코코라는 인형을 솜 인형으로 복각해내어 함께 지내며 길 위에서 찍었다. 그리고 코코와 함께하는 순간이 많아질 수록 코코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존재가 아닌 다시 내 곁에 늘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인식되었다. 잃어버린 것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지만, 상실감을 감소시키고, 과거 사라져버린 존재가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인형은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해준 매개체가 된 것이다. Finding Koko 작업을 통해 어느정도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한 목표치를 달성해 냈고, 이제는 내가 상실한 다른 존재를 찾아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상실의 감각이 현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록 내가 인형에 의지하게되는 시기가 맞물리게 되었다. 코코 작업을 했을 당시에는 홀로 세상에 남겨진 듯 외로웠고, 이번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와 13년간 함께 했던 강아지 지젤이 죽었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도 떠올리면 언제나 그리웠던 친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마음에 빈자리가 생기는 때였다.
‘Finding Koko’의 전시 서문에서 ‘나에게 있어 상실감은 작업의 동기를 부여한다’라고 적었다. 반려견으로 살다죽은 아오키와 지젤, 때꺼우라 불리우던 외할아버지댁의 거위. 그리고 이후갤러리 뒷뜰에 자주 나타났던 고양이들을 생각했다. 전자는 나를 떠난 생명체였고 후자는 내가 떠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였다. 혹은 지금은 함께 하고 있지만, 언젠가 사라지게 될 반려견 나오미나 고양이 샤샤와 같은 존재도 있다. 그리고 이미 죽어 그림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프리다칼로와 같은 인물도… 내게 있어 상실감이란 실제로 죽거나, 내 눈앞에서 멀어진 것들에 이입된 감정을 뜻하기도 하지만, 크게 본다면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 내 삶의 조각들에도 그 감정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떤 과거든지 상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편적 차원의 상실을 내포한 과거에는 우리 모두가 지내왔던 유년 시절도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인형은 내가 잃어버린 코코처럼 처음으로 상실하게 되는 대상이 된다. 나는 그런 보편적 차원의 상실에 관한 기억을 인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린 아이같이 미숙하게 남아있는 기억이어도 모호한 형상은 존재한다. Child-like Memory란, 바로 그렇게 기억 안에 살아있는 대상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코코가 인형으로 복각된 이유 중에는 원래 코코가 인형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솜 인형이 주는 편안함이 마음의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만약 기억에 물성이 있다면, 기억을 잃지 않는 한 나와 함께 했던 존재들은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물컹물컹하고 말랑말랑한 기억. 기억의 물성과 내 손에 쥐어져있던 인형의 질감은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것에 부여되는 사랑의 감정이 높아질 수록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은 더 극대화 된다. 그래서 나는 기억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존재들을 인형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 했다. 손에 쥐면 감촉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늘 곁에 두고 싶었던 인형을 떠올리면서. 사진 속의 평면적인 방법으로만 기억하는 것 보다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닌 입체화된 인형으로 도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인형의 피부가 되는 천의 질감은 어릴적에 정말 좋아했던 부드러움이라고 불리우던 이불의 감촉을 떠올렸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체온이 따뜻해지고, 움츠렸던 마음이 녹아내릴 수 있었던 이불처럼 인형의 감촉도 중요했다. 컴컴한 방에서 잠이 들때도 편안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그런 부드러운 존재.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 순수하게 행복했었다. 인형을 만들면서 최대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했고 그런 과정을 즐겼다. 유년은 현재에서 가장 멀리 있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늘 가장 선명한 언어로 내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완벽하게 동심으로 돌아간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움의 대상들이 인형으로 탄생될 때마다 그들과 나눴던 행복한 감정이 현재로 옮겨져 올 수 있었다. 인형으로 만들어진 기억 속의 존재들은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길어지고, 납작해지고, 커지고, 작아졌다. 왜 인형은 길어졌을까. 형체가 모호하고 흐릿한 이미지의 존재일 수록 나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팔과 다리가 길어졌을까? 멀어진 기억의 길이 만큼 인형의 신체가 길어졌다.
작년 봄에 외할머니의 침실에 놓여있던 하마 인형을 떠올려본다. 원래는 쿠션 대용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눈코입이 달린 졸린 표정의 하마여서 할머니는 쿠션을 인형으로 생각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잠 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잘 있었니” 하고 묻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친할머니께서도 우연히 길을 가다가 발견한 가지를 여자 아이로 의인화한 인형을 침대 맡에 걸어두고 하루 중 몇번 씩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고 하셨다. 어릴적에 가지고 놀던 인형에 비하면 참 곱고 예쁘다는 말씀도 하셨다.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도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자신만의 고유한 인형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고, 새로운 인형에게서 위안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그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던 인형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고, 그때의 따뜻한 감성으로 위안을 얻었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인형에게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들어내 본 적 없는 극미한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본연의 성질이 있는 듯 하다. 애착을 가졌던 인형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인형에게서 받은 위안이라는 감정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형은 그런 그들에게 공감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공감의 바탕에는 인형과 서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마치 자신의 동생처럼 아껴주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장 크게 자리한다고 생각됐다. 우리에게 인형은 생명체와 같았다. 지금은 자주 꺼내어 감정을 교류하지는 않지만, 늘 애착을 가지고 지켜주었던 ‘인형’이라는 형체는 상실된 그리움의 대상을 현실로 끌어내기에 적합한 소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형으로 만들어진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진심과 기억이 인형에 담겨졌다. 누군가 버린 인형에도 누군가가 소유했던 기억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 인형이란 애정어렸던 상실되어가는 대상에 관한 기록물이다. 애정의 대상과 나눴던 교감과, 그 대상에 이입됐던 감정들이 인형 안에 담겨지길 원했고, 그러한 의미로 만들어진 인형은 사람의 감정을 녹취한 녹음기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인형으로 탈바꿈된 존재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믿고 따라 줬다. 어쩌면 그것은 대상과 나눴던 내 주관적인 감정이 더 크게 이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질 수록 누구와도 공유하기 싫었던 온전한 나만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소망도 담겨있다. 그것이야말로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동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정희기, 프리다칼로 & 모나리자,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몽키포레스트
Vintage Fabric, Cotton, Knitting Wool, Thread, 2015
▲ 정희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천사들, Vintage Fabric, Cotton, Thread, Acrylic Paint, 2015
▲ 정희기, 목욕하는 상실들, Paper Digital Printing, 2015
현실에서는 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내 기억 속에 존재 했던 그리움의 대상들이 인형으로 만들어져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다. 그들은 기억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불러 일으킨 상실을 포함한 존재들은 기억 속의 그때처럼 다시금 나를 향해 웃고 있었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인형들이 오래 남아있길 바란다. ⓒ
PROFILE
정희기 HIGI JUNG
2009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전공) & 사진학과(부전공) 졸업
개인전
2015 Chiild-like Memory, 미나 아뜰리에, 서울
2013 Finding KOKO, 미나 아뜰리에, 서울
그룹전
2014 Breath Together, 다테시나, 일본
2013 The Day After, Pacifico, 요코하마, 일본
2013 Ex-Formance,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
2012 공존展, 이후갤러리, 서울
2011 Hommage #2 - The Beatles, 이후갤러리, 서울
2010 Hommage # 1, 이후갤러리, 서울
2010 UNFRAM, GS Tower, 서울
CONTACT
vasilly@naver.com
http://findingkoko.tumblr.com/
http://blog.naver.com/vasil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