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2015년 여름 첫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앞으로 작업의 관한 걱정과 고민에 지쳐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첫 개인전을 했지만 작업의 대한 의구심은 계속해서 커지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서예를 전공으로 택한 뒤 항상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이 있다. 아주 오래전 문자를 적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서예가 문명이 발달한 현재에는 어떤 이유로 지속이 되고 있을까... 단순히 한문이나 한글을 적는 기능으로써의 서예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현시대에 서예를 하는 나는 서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것인가. 동시대에 작업을 하는 서예가들조차 한문으로 구성된 문장이나 시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서예에는 규칙, 법칙이 있어 작업하는데 제약으로 작용하는 까다로운 예술임은 틀림없다.
미술시장에서의 서예는 그 서예를 누가 썼느냐가 서예작품의 가격을 좌지우지한다. 인품 있고 훌륭한 사람이 쓴 글씨는 전문적인 글씨가 아니어도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고 뜻이 높게 평가된다.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나는 가끔 비전공자나 전공자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서예작품을 볼 때 글씨를 읽어?”라고 물으면 친구들은 아니라고 답을 한다. 그렇다 현시대의 서예는 과거의 서예와 역할이 다르다. 이전의 서예는 의미 전달의 목적으로 활용되어왔지만 이 시대의 서예도 의미 전달이 목적일까? 아마 의미 전달의 목적보다 관람자의 미적 쾌감을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고민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은 무엇인가 고찰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고서적을 찾으려 들른 황학동의 한 서점에서 오래돼 보이는 편지를 발견했다.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채워진 그 편지에는 지워지고 다시 쓰이고 망설이다 찢어진, 어렵게 어렵게 글을 이어나간 흔적 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이 묻었는지 색이 바래 번진 흔적, 거미줄처럼 얽혀버린 문자, 마구잡이로 지운 흔적 그리고 정성스럽게 잘 접힌 종이 자국...... 문자의 의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오래된 편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문자의 존재 이유를 초월해버린 즉 문자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실오라기 하나 없는 순수한 본질이었다. 그것은 문자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나에게 문자 이상의 구체적이고 서정적인 심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