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한 사람이 여러 인격을 전전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적으로 그렇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웃어넘기기 쉽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존재가 대체로 별 변화 없는 하나의 개체라고 강하게, 지속적으로 느낀다. 지금의 ‘나’는 내일의 ‘나’와 같으리라 느낀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본 바, 그런 확신은 잘못된 것이다. 본인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의 형상이미지와 왜곡된 이미지의 표현에 관심이 많았고 ‘나’ 또는 상대방이 마주한 실재는 어찌 보면 영화 <매트릭스>나 가상, 파생실재의 형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체성은 개인의 기억들의 혼합체이다. 정체성을 가장 가깝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신체는 얼굴이다. 신체와 정체성을 이용해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소재 중 얼굴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정체성, 사회성, 역사성 등을 함축하고 있다. 유의미한 소통이 어려워진 현대의 상황,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형상을 통해 이 시대의 병폐와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러 작품에 존재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각자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한 가지 이야기로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체성은 결국 해체된다. 개개인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아 찾기를 반복한다. 현대인의 자화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다중성을 다양한 태도와 색다른 연출로 이미지화 한다. 단순히 개인적 관심을 넘어 인물의 내외적 표현성을 극대화하는 미학적 대상으로서 인물화의 표현가능성을 넓히는 토대로써 각별함을 지닌다. 또한 ‘사실이란 단순히 시각적으로 이런 것이다’라는 마침표가 아니라 ‘시각적 형태를 넘어 어느 선까지 사실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제적 표현에 있어서 매우 비현실적인 위치에 있지만, 작업으로써의 표현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