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강요나 억지에 의해 주어지는 자리가 아닌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 아들 혹은 딸의 역할이 주어지고 자라면서 친구 혹은 형제, 자매의 호칭이 생기며 어른이 되면서 어려서는 겪기 어려운 책임감의 무게를 견디는 어른, 부모, 직업들이 생긴다. 우리는 이렇듯 자연스레 생기는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스스로를 기특하게 누군가는 조금 부족한 듯 느끼겠지만 한 사람으로 이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간다 함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주변의 누군가를 잊게 되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거나 나의 친한 친구 혹은 부모가 될 수도 있다. 인식(기억)해야만 다시 인식되어지고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저 잊혀진 누군가가 될 뿐이다. 나도 누군가를 누군가도 나를 충분히 잊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색의 덩어리로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숲이 그려져 있다. 때로는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때로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가득한 바다 숲으로 표현되어 진다. 이들 모두는 숨어 있어 보는 관람자로 하여금 곤충이나 산호 등의 것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건 그린 자신이건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한 모습으로 열심이지만 앞으로 나아가거나 누군가 알아 주는 일은 매우 힘들다. 숨어 있어 찾고자 해야만 보여지는 것, 인식해야지만 기억되어지는 것들을 표현한다. 우리 모두는 오늘도 각자의 색을 가졌지만 그 색을 보여줄 수 없는 카멜레온처럼 살아 나아 간다. 잘 찾아보면 그 안에 우리가 있다. 작품은 크게 숲과 사물 시리즈로 나뉜다. 숲에는 무언가 가득한 것들이 화면 안을 채우고 그것이 바다, 사막, 숲, 열매 등의 숲으로 이뤄 진다. 사물 시리즈에서는 패턴이나 색과 같은 무늬를 가진 사물들이 숨어 있다. 관람객은 그 사물을 찾을 수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찾아 주어 감사하고 굳이 찾지 않음의 일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 덩어리 안에서 패턴 안에서 때로는 같은 색으로 때로는 조금 다른 색으로 살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