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인사미술공간 여섯 번째 전시 :
이영민 개인전
<앵그리 씨어터_angry theater>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에서는 2010. 8. 31(화)부터 9. 16(목)까지 이영민 개인전 <앵그리 씨어터_angry theater>를 개최합니다.
입체드로잉을 연극적 상황을 통해 구현한 2009년 작 로 잘 알려진 이영민 작가가 2010년 인사미술공간 전시를 통해 신작 <앵그리 씨어터_angry theater>를 선보입니다. 은 L박사가 밀실에서 작가의 복제 드로잉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가학적인 과정을 위트있게 그려낸 한편의 영상 드로잉 극입니다. 드로잉은 가느다란 선으로만 그려진 평면회화에 불과하지만 드로잉의 윤곽을 오려내고 그 틈에 캔 뚜껑, 고무줄, 빨대 등 각종 오브제를 삽입함으로써 드로잉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생한 3차원의 입체 드로잉으로 재탄생했습니다.
2010년 작 <앵그리 씨어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L박사가 만드는 입체드로잉극이기는 하지만, 햄릿의 내러티브와 연극적 구성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내러티브와 극적 구성이 명확해졌고, 작가의 말에 의하면 “진짜 죽이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전작과는 차별화됩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아버지를 독살한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려던 햄릿이 실수로 연인인 오필리어의 아버지와 오빠를 살해하게 되고 결국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도 죽음을 맞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앵그리 씨어터>는 햄릿의 내러티브를 차용하지만, 햄릿을 조종하는 연출자이이면서도 햄릿 대신 숙부와 어머니를 살해하는 L박사가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화난햄릿 _ 드로잉 극 <화난햄릿> 中 _ 2010 화난햄릿 스틸 - 드로잉 극 <화난햄릿> 中 - 2010
L박사는 전작 에서 처음 등장한 가상의 캐릭터로, 입체드로잉실험을 위해 복제드로잉을 창조한 후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 작가의 손 즉, 신체의 일부를 통해 극에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L박사가 작가의 분신인 대리 창조자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됩니다. L박사는 결국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고, 작가의 자화상인 드로잉들과도 결국은 같은 인물로, L박사와 드로잉들은 모두 이영민이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합니다. L박사는 결국 자기 자신인 드로잉들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모순적인 존재인데, 그가 벌이는 잔혹한 살인극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L박사가 드로잉들을 위해 만든 극단인 <앵그리 씨어터>의 햄릿을 통해 보다 명확해집니다.
‘욕망, 그리고 《햄릿》에 나타난 욕망의 해석’이란 글을 통해 《햄릿》을 분석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햄릿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억압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결국 욕망을 채운다 해도 그 대상 역시 허상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욕망은 남고 인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또 다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라캉의 욕망이론입니다.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비극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문학, 영화, 평론 등 각 분야에서 수없이 연구되고 분석되어 왔던 것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대한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기 때문이고, 그 내러티브를 빌려온 <앵그리 씨어터>는 L박사의 욕망들이 충돌하고 분출되는 ‘L박사의 욕망극장’인 셈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자아의 욕망을 말하던 전작에 비해서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도 햄릿의 내러티를 빌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앵그리 씨어터>는 잔혹하고도 비극적인 주제에 기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는 이들은 드로잉들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켜 감상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앵그리 씨어터>는 관객들이 깔깔대며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웃기는 비극’입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유머와 위트는 독일의 극작가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식으로 거리두기를 통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이젠 죽는 것에 신물이 났다는 드로잉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을 위해서 약 6개월간 총 25632번에 달하는 죽음의 리허설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리허설에 불참하거나 열의를 보이지 않거나 혹은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킨 드로잉들은 잔인무도하게 폐기처분했고... L박사에 의해 가장 훌륭한 연기자들로 인정받은 드로잉들이 주․조연 배우로 발탁된 극단 ’앵그리 씨어터‘의 <화난 햄릿>을 찾아준다면 죽음의 리허설에서 살아남은 드로잉들의 ‘진짜 죽음’을 목격하는 잔인한 즐거움을 선사해드리겠다’며 작가는 관객들을 초대합니다. 그의 초대는 죽음과 욕망의 이면만큼이나 어둡지만 마력을 느끼게 하는 가장 웃기고도 유혹적인 초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전시는 햄릿의 내러티브를 빌려왔고, 연극무대와 같은 세트장치, 3막으로 구성된 연극적 구성이 강조되었을 뿐 아니라 전시장 전체를 연극의 공연장처럼 설정해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마치 공연장에 들어온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관객들은 1층에서 공연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지하의 공연 무대로 입장해 공연을 관람하고, 드로잉들의 연습실로 꾸며진 2층에서 배우들인 드로잉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웃기는 비극이라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이영민 작가의 <앵그리 씨어터>전에 많은 관심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