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다 영 SOLO EXHIBITION
' Fragment of Memory'
2017. 09. 13. Thu - 09. 19. Tue. PM.1
분명히 그곳을 보았다. 실제 어디엔가 존재하는 어떤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표시 할 수 없고 꿈에서 본 장면처럼 다가가서
만질 수 없으며 구체적으로 기억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그곳이
있다는 사실뿐이며 그 곳의 어렴풋한 기억을 느낄 뿐이다.
인간의 눈을 통해 보는 풍경은 모든 사물을 보는 것이 그러하듯이 정확하지 못하다.
인간의 감각은 객관적 사물의 덩어리 그 이상을 보는 것을 가능케 하고 그 감성으로
인해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은 주관적 감성과 개성적 시각으로 변형되고 재구성 된다.
특히 큰 물상인 산과 들판, 흐르는 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으로 담는 것을 가능케한다.
산수화는 산과 물 등을 포함한 풍경의 물리적 의미보다 그 정신적 의미가 더 강조된 경우가
많았는데, 본인은 기억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보일 듯 한 어렴풋한 풍경을 본인의 심상에 비추어
전통적 산수의 관념적 개념을 바탕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안으로부터의 풍경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것이 비록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감상자들은
그림을 통해 각자의 ‘어떤 곳’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기법에 있어서 ‘판화’는 본인 작업의 주제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기법이다.
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연상 될 수 있다는 것,
즉 같은 장소라도 시간, 날씨, 계절, 바람의 방향 등에 따라 그 곳은 전혀 다른 곳이
될 수 있다는 작업의 주제와, 같은 원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종이에다 ‘옮겨’ 찍는다는
간접적인 특성 때문에 잉크의 색, 원판에 더해지는 다른 기법, 찍혀지는 종이의 종류,
프레스기의 압력 등에 따라 충분히 다른 작품이 탄생 할 수 있는 판화의 특성은 기법과
작품의 형성 배경 및 주제를 연결시켜주는 매우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원판(원형)은 존재하지만 작가의 주체적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특히 본인이 자주 다루는 기법인 동판화의 한 종류 ‘에칭’은 ‘층’을 쌓아 나간다는
데에도 작품과의 연관성이 존재한다. 본인은 제판하는 과정에서 짙은 부분부터
부식시켜나가는데, 이러한 과정은 기억 속 풍경을 떠올리는 과정과 닮아 있다.
기억은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의 장면 하나로는 창조되지 않는다. 계속된 변화와 더불어
장면과 장면, 같은 날 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어떤 풍경, 냄새, 또 다른 기억 등이 서로
겹치고 쌓여 또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최근 작업에 도입되고 있는
‘담겨있는’ 물에, ‘비치는’ 산의 이미지는 우리의 마음 속에 ‘담아낸’, 혹은 ‘비춰진’
풍경을 상징하며 이는 어떤 것이 실제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나의 작품들은 풍경의 기억을 극대화 시킨 장면들로, 실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은실재보다 더 극대화 된 본질적 공간이다. 그려진 풍경은 끊임없이
기억을 자극하지만 그 어느 곳도 그곳이 아니다. 철저히 나의 기억과 느낌에 의존하여
창조된 풍경은 단지 객관적인 시각적 인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억으로부터
재생산된 내 안으로 부터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상도, 비구상도 아닌 재현을 위한
탈재현의 과정이며 탈재현을 통한 보다 더 실재적 재현의 결과물이다.
.
..소리도 향기도 없는 그 공간은 실제 그 이상의 실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