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화연구회는 판화의 본질과 현대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최근 여러 해 동안 의미 있는
전시를 개최해왔습니다. 2015년 '판화경'을 주제로 창립전을 개최하였고, 2016년 '기호경', 2017년 '복제
경'에 이어서 올해는 '판화의 시간성'을 주제로 전시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 <시간의 리듬, 사물에 새긴>
흔적>展은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인 '시간성'을 주제로 다향한 판화 작품으로 선보입
니다. 시간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흐름이지만 시간만큼 신비로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그러한 보편적인 것과 매우 다르며, 현실은 보편적인 시간과 다른 특수한 구조로 나타납니다.
시간은 무(無)와 닮아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공허(空虛)처럼, 모든 것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빛나는
창공이나 어두운 대지와 같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낯섦 속에 우리는 속해 있습니다. 그
증거는 일상의 사물들과 조우하는 우리에게 공허로부터 시간의 강을 건너 불현듯 어떤 '의미'가 선물처럼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이면에 무의식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도래하는 타자의 시간입니다.
참여 작품들은 물리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의 고정관념을 해체합니다. 판화의 복수적인 제작 방식은 수
직적인 시간의 축을 수평적인 방식으로 이동시킵니다. 판화의 패러다임은 그 자체가 시간을 함축한 물질
의 이동입니다. 최종적으로 시간의 흔적은 사물의 표면으로부터 이미지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시간은 우
리에게 각인됨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증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판화를 대표하는 40여명의 기성 작가
들이 참여하여, 그들 자신의 세계 안에서 발굴한 시간의 향연으로서, 다채로운 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_기획자 이지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