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주 개인전 '숲으로" 전시장소:유나이티드갤러리

UNITEDGALLERY Invitation

Kim, Sin Joo Solo Exhibition

' 숲 으 로 '

2019. 04. 24. wed - 04. 30. tue. pm.12

쭉쭉 뻗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깊은 숲 사이로 언뜻 하얀 곰도
보이고 빨간 차도 지나간다. 여러 겹 물감이 층층이 겹쳐있고 또 노출되어 있다.

남들과 다른 작업 방식으로 이미 겹겹이 칠해진 안료들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며
빼곡히 들어판 나무숲을 그려낸다. 묵직한 채도의 교목 숲 한 겹이 지나가면 각각의
긴 줄기들이 또 다른 톤의 겹을 드러낸다.

역사(歷史)는 차례차례 지나가며 쌓인 자취라는 뜻이다. 독일어 Geschichte는
겹겹이 포개어 쌓여졌다는 의미에서 역사(歷史)를 말한다. 여러 겹의 레이어가 쌓이고
드러나며 이루어진 깊은 숲에는 개인의 지나간 경험이나 집단의 역사가 담겨 있다.

작가가 한 겹씩 발견해주지 않으면 다른 겹들은 또 그저 그 아래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역사란 현재의 내가 과거와 나누는 대화하고 했던가.

▲ silence, 72x60cm, Acrylic & oil on canvas, 2018

▲ yellow car, 53x45cm, Acrylic & oil on canvas

김신주 작가는 한 동안 화려하고 예쁜 꽃들을 그려냈다.

두 팔 벌려 안기도 어려울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그야말로 품고 싶도록 한 아름 예쁜 꽃,
채도 높은 꽃들의 풍성함과 발랄함에 취해 있다가는 어느새 마음마저 달뜨게 되는
그런 꽃그림들이었다. 보통의 이성으로는 활짝 핀 꽃그림과 요즈음의 장중한 나무숲
그림 사이에서 태생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기 어렵다. 과연 저토록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이 나오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곷그림이 한창 밝은 청춘의 젊음이라면, 요즈음의 숲 그림은 이제 한 고개를 넘은 중년의
연륜쯤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숲은 저마다의 생장과정을 가진 나무들이 중첩되어 울창해진다.
또 그 나무들은 나이테로 세월을 말해준다.

작품 속 숲을 이루는 자작은 하얀 겹으로 껍질을 이루는 나무이니, 물감을 여러 겹 칠하고
벗겨지는 작가의 화풍에 더 어울리는 소재일 것이다.

▲ happy flower, 90x50cm, watercolor on paper

▲ yellow roses, 90x50cm, watercolor on paper

나무줄기의 형태는 구상적이지만 그 내용은 추상적이다. 숲 자체는 살제를 보고 그려도
곁가지와 배경의 과감한 생략은 결국 본질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복잡 미묘한 질감과
어쩐지 무심해 보이는 단순함이 병존한다. 어두운 나무들은 다른 나무들 사이사이 비치는
밝고 알록달록한 나무들로 균형을 이룬다. 덧칠을 하고 다시 벗겨내는 과정에는
치밀한 계획과 우연한 효과가 함께 한다.

▲ green car, 53x45cm, Acrylic & oil on canvas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저마다 지나온 삶의 질곡은 압축되어 두께가 더해진다.

과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작가의 창작은 당연히 새로운 것을 찾지만 그 내용은
이미 지나간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으로 채워진다. 화가란 자기의 눈으로 담아둔 장면들을
자기의 눈으로 되살리는 작업일 테니까. 대론 벗겨낼수록 아직도 날카롭고 아파서 그저
기억의 창고에 묻어두면 좋으련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그만두지를 못하니...

그것은 화가의 숙명이리라.

_평론가 조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