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소개
박건희문화재단은 캐논코리아 컨슈머 이미징(주)과 함께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을 시행합니다. 본 사업은 차세대 사진가로 성장할 전국의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을 이끌고 국제화를 선도할 차세대 사진 인력을 발굴하고 능력을 개발하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2010 미래작가상’은 올해 7월 발족식을 가진 이래 카메라 Canon EOS 5D Mark II, EF 24-105mm f/3.5-5.6 IS USM 를 상품으로 수여받고, 교육프로그램인 튜터링 수업을 통하여 각각의 작업을 발전 시켜 온 결과를 이번 전시로 발표합니다.
전시 제목 : 2010 미래작가상 사진전
기획 :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2010 미래작가상 :
이상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4학년) : 물방울 르네상스
이지연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4학년) : 중보기도자
임민영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4학년) : 임민영
튜터 : 마스터 튜터 - 구본창, 튜터 - 박영미, 김옥선, 천경우, 최승훈+박선민
2. 서문
2007년부터 ‘박건희문화재단이 발굴하는 캐논장학생’으로 제정된 본 프로그램은 점차 다양화 되고 있는 사진 예술의 문화적 확장을 지원하고 젊은 세대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취지하에 ‘미래작가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4회를 맞이하였습니다. ‘2010년 미래작가상‘에는 전국의 대학생 116명이 응모해주셨고 지난 6월 신중한 심사를 거쳐 3명의 장학생을 발굴하였습니다. 이들은 지난 5개월간 구본창 사진가를 비롯한, 김옥선, 천경우, 최승훈+박선민 사진가들에게 튜터링을 받고 이제 그 작업의 성과를 전시회와 작품집으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재는 자신의 작업<물방울 르네상스>를 통해 우리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평면 예술의 표현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현재의 사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원근법에 대한 그의 작가적 발언은 빛의 성질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고전 회화를 바라보는 이 작업들은 사진과 미술, 그리고 이차원과 삼차원의 인지 과정을 생각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지연의 <중보기도자>는 사진을 통해 종교에 다가서는 작품입니다. 예술과 종교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그 출발점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때로는 종속 관계이기도, 때로는 배타적 관계이기도 했던 인간의 이 두 정신적 영역은 현대 사회에서 다소 먼 거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기원하는 기도자들의 간절한 모습과 그들을 둘러싼 배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작가와 피사체와의 긴밀함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들이 깊이 있게 드러났습니다.
임민영은 자신의 이름을 작업 제목으로 한 <임민영>를 통해 일상의 작은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시선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사진을 통해 사사로움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의 작업은 사물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만나 생겨나는 감성적 충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관찰력과 화면 구성력이 뛰어난 그의 작품들은 큰 가치를 향해 앞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변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은 본 프로그램의 사진 교육과정인 튜터링을 통해 예술적 참신성과 독창성, 사진에 대한 매체적 이해와 기술적 면밀함, 그리고 향후 작업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계속적으로 미래작가상이 발굴하는 장학생들이 향후 진중한 태도로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한 신중한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사진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우리 청년 사진가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박영미 (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3. 작가노트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Lady with an Ermine, 2010
이상재 / 물방울 르네상스
물방울 르네상스는 ‘일점 원근법’ + ‘큐비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을 하나로 한 작업이다.
조금씩 다른 위치에 놓여있는 물방울, 물방울 속에 맺힌 상을 통해 다시점이 표현된다. 르네상스 이후 소실점 원근법을 상징하는 회화를 밑바탕에 둔 나의 작업은 르네상스의 원근법(밑바탕에 둔 회화)과 큐비즘(물방울을 통해서 본 다시점)이 함께 존재하는 작업으로써 르네상스 이후 원근법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회화와 사진의 관계 나아가 그림과 사진, 현실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였다.
표면장력에 의해 반구형으로 맺힌 물방울 속 회화는 렌즈의 효과를 내면서 도립상으로 표현된다. 물방울이 반구형으로 맺혔을 경우 어안렌즈처럼 넓게 상을 담아내고 있으며, 원만하게 물방울이 맺힌 경우에는 반구형의 모양보다 더 적은 부분 상을 담아내고 있다. 그 밖에 물방울의 크기, 왜곡, 표면장력의 강약에 따라서 물방울 속에 맺힌 회화의 일 부문은 다양이 변형된 모습으로 하나의 대상의 부분들을 다시점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물방울 전체를 조합해서 본다면 르네상스 회화를 큐비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나, 소실점 원근법이 적용된 회화처럼 고정되고 정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시선을 통해 들어온 시․지각 정보를 두뇌에서 조합하여 하나의 장면처럼 인식하도록 배워왔을 뿐이다. 이것이 르네상스 이후의 일루저니즘이며, 나는 물방울 다시점을 통해 사람의 시선과 시각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의 사물과 사회현상을 보더라도 획일화되고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과 시각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The prayer #18, 2010
이지연 / 중보-기도자 _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그 때
기도는 나와 다른 영혼을 연결시키는 마음-줄이다.
만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면, 우리 힘으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들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게 된다. 중보 기도야 말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간구에서 중보로 기도를 바꾸는 것은 우리의 무게 중심을 우리 자신의 필요에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사로 옮기는 것이다. 중보 기도는 이기심이 없는 기도이며, 심지어 자신을 내어주는 기도이다.
어떠한 사랑의 행동들 보다 묵묵히 다른 이를 가슴에 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으로서 창조주의 마음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신 그 분의 마음을 알아가고, 닮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자 소망인 것이다.
사진에 보여지는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다. 기도 편지와 물건(object)과 배경을 통해 기도자가 중보기도 하는 대상을 그려보게 한다. 사진 속에 기도하는 인물의 감은 두 눈을 통해 감상자를 그의 내면으로 초청한다. 그리고 그가 쥔 물건과 배경을 통해 어떤 영혼을 마음에 담고 있을 지 상상해 보게끔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도편지의 텍스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색과 형상을 띠고 하나의 이야기(narrative)를 들려주는 과정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 작업이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의 작고 연약한 자리에서도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중보-기도자>가 상처 입은 자에게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는 누군가의 따스한 품이 있다는 것을, 또한 상처를 가진 우리가 상처 입은 자들의 치유자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길 소망한다.
이 연약한 빛을 가진 이미지를 통해 빛을 잃고 스러져 가는 누군가의 영혼이, 다시금 사랑의 빛으로 꿈꿀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작업에 대한 기도의 응답일 것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그 때를 소망하고 기다리며.
Imminyung #1, 2010
임민영 / Imminyung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루하루가 비슷한 인상을 남기며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방 안에서, 매일 같은 천장을 보며 깨어나고,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매일 같은 라디오 소리를 듣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면 하루도 완전히 같은 날은 없었다. 어느 샌가 발톱은 자라 있었고, 화장품 공병에 꽂아놓은 국화는 물을 반 이상 흡수한 모습이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 위에도 모르는 사이 먼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인들의 모습 역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느새 엄마의 얼굴에 피어난 검버섯처럼, 언니의 부서진 발톱처럼….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들이 나로 하여금 평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사진에서 나는 어떤 대상의 표면을 뚫고 올라오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은 그 대상 자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자국과 흔적, 찢겨짐, 어떤 생겨남 들은 내 주위에서 끊임없이 펼쳐진다. 겉보기에 잔잔해보여도 매 순간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 있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사진들은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암시적으로 어떤 인상을 남기고자 하였다. 해가 뜨기 전, 혹은 지기 전, 날이 경계에 서있는 때의 푸르스름한 빛은 내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대상의 작은 흔들림과 소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상한 조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의 침묵은 평온함과 동시에 알 수없는 불안을 동반한다. 침묵 속에서 사물의 존재감은 평소보다 더 부각된다.
나는 녹이 슨 것처럼, 곰팡이가 핀 것처럼, 무언가가 스미어 나오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에서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음을 보게 되는…. 나는 작업을 통해 지극히 평범하지만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작은 조각들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기를 기대한다.
4. 튜터노트
이상재 튜터 : 최승훈+박선민
물방울.
왜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면 한번쯤은 물방울에 천착하는 것일까?
미미하며, 무수하고, 가변적이며, 완벽하다.
작은 물방울이 거두어들인 이 경이로운 작은 우주는 결국 카메라의 눈과 다르지 않음이다.
그래서일까? 이상재 학생이 포착한 물방울들은 자연 속에서 만나는 그것들과는 다른 보다 작위적이고 기계적이기까지 하다. 카메라가 잡는 변화무쌍한 세상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논리적이고 기능적이며 멋진 아우라를 갖는 기계를 보는 듯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최승훈+박선민이 제시하고 싶었던 가능성들은 기존에 이상재 학생이 구축한 구조에서 보다 변화무쌍하고 예기치 못하는 물방울의 변수들을 화면에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카메라라는 한정된 기계가 실현하는 이미지들이 무한하게 변화하며 새로움을 만들어내듯 이상재군의 작업에서도 구축된 논리에서 출발했지만 우리가 논리적으로 예기치 못하는 자유로운 어떤 지점을 실험해보기를 기대해 본다.
이지연 튜터 : 김옥선
남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남을 위한 기도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톨스토이의 확신에 찬 발언에도 불구하고 상투적이고 상처투성이의 개념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종교는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이를 극복하고 초월적 존재인 신에게 나아가는 수단이다. 세계에는 수천가지의 종교와 신앙이 존재한다.
하지만 종교와 기도가 만나는 지점은 우리의 시선을 편협한 방향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딜레마가 있다.
이지연은 '기도자 Prayer' 라는 일련의 작업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기도자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얼굴표정과 동작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어 보이고 일견 종교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작업에서 보이는 번뜩임과 치열함이 우리가 가진 딜레마로 필터링 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색으로 읽혀지기를 바란다.
임민영 튜터 : 천경우
이미지들은 온통 주변의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불편한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조각들을 조용히 주워 담아 자신의 문장으로, 시로 엮어가는 사람이 여기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사진들을 펼쳐놓고 좋은 것, 나쁜 것을 따지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것에 동의했다. 첫 만남에 볼거리 보다는 읽을거리 좀 달라고 조르는 사람도 나는 반가웠다. 그리고 건네주고 알려준 책들을 갈증을 달래듯 열심히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새 이름을 지어주는 일 안에 더 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도 감지하고 있다.
타인이 아닌 자신과 진심으로 대화를 하려는 의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을 잠시나마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기쁘고 소중한 일이었다.
민영의 지극히 사적이고 마치 자신의 몸으로부터 벗어나와 지켜보는 듯한 뛰어난 예민함은 처음 대학을 들어와서 흑백으로 촬영한 속옷차림의 아버지 이야기, 거리의 풍경들 속에 숨어있는 누군가를 또렷이 바라봄 에서도 엿보인다.
구석, 부스러기 같은, 무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는 이 인간적인 이미지들은 눈을 감아야지 들을 수 있고 어두운 곳에서 오래 앉아 있어야 조금씩 보인다.
스스로로부터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자신이 열린다는 것을 함께 되새긴다. 영감은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의 선물이 아니라 노동의 댓가라는 것도, 내 것이 아닌 이야기는 오래 할 수도 없고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도 없다는 것도 조금씩 알아 간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사진들이 더 좋고 덜 좋고는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를 오랫동안 지탱해 줄 나에 대한, 사진에 대한 절실한 사랑의 다짐이 아닐까.
고 박건희씨가 보던 책 한구석에 “나는 촬영을 마치고 현상할 때까지의 시간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라고 써진 것을 본적이 있다. 이 설레는 시간은 불안과 기대, 창조의 행복이기도 하지만 거울 속의 새로운 나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나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임민영이라는 작가는 이제 첫 촬영을 마치고 현상이 다 될 10년 후 즈음을 기다리는 행복을 느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