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치인 이형기 도예전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에서 진행 중인 예술인집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천치인 이형기 작가님의 전시가 이중섭 창작스튜디오 전시실 등에서 진행 됩니다.
작업 노트
‘남쪽바다 끝자락에서 뭍을 그리워하며....’
잔설이 남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게 하는 2월말 제주도 서귀포는 환상의 섬이 아니라 내게 삶의 체험 현장 그 자체였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귀양지로 삼았던 섬. 한라산 자락 천지연 폭포소리의 내음을 맡고 새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당산나무 숨소리를 베개 삼아 제주의 전통 초가집에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였다.
어느덧 육지에서 서귀포로 건너온 지 열달이 되어 간다. 한 10년은 지난 듯 싶다. 참 기나긴 세월이었다. “남들은 올레이니, 관광이니, 무릉도원처럼 생각하는 제주도이다” 여행자에게 낭만과 환상의 섬인 제주도가 나에겐 유배지나 다름 없었다. 그 안에서도 남쪽 끝자락 서귀포..
“내가 깃든 곳은 천지연 폭포가 흐르는 아니, 휘돌아 감도는”
기운센 무속의 피가 흐르는 당산나무 앞집 초가집이다. 어지간히 터가 센 자리이다.
“곧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초가집, 나와 살아온 세월이 같단다”
여러 동료들의 힘을 빌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 작업실답지 않은 작업실에서의 지난 3월말쯤 되어서야 작업을 시작하였다.
“육지에서 가져온 흙과의 싸움, 나와의 싸움, 고독과의 싸움, 제주 특유의 자연과의 싸움”
“절절하였던, 나에겐 투쟁 그 자체였다” 자연에 적응하고 순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생경한 바람, 변덕스러운 기후, 씁쓸하고 축축한 습기”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고단함이 더해졌다. 그 고단함은 어쩌면 육지를 그리워함으로 먼 타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절절함으로 비롯된 것일지 모르겠다. 척박하게 주어진 환경이 나의 소명을 더욱 절실하게 해주었으리라 묵묵히 흙과 싸우지 않고 교감을 나누었다.
“흙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고, 물고기가 나오고, 사랑스러운 여인들이 잉태되고” 나의 영혼의 그림자가 춤을 추듯 새로운 피조물과의 만남이 계속되었다.
고독의 힘이 날 불타오르게 해준 것 같다. 자연과 신들에게 감사하다.
“진정 흙의 위대함은 대단하다. 마을 가는대로, 손 끝 가는대로 창조되어 지금의 나를” 숨 쉬게 하고 마라톤 할 수 있는 끈기를 가르쳐준다.
또 흙이 나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면 불은 절망 속의 겸손을 각인시켜 준다.
참으로 고맙다.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게 해준 도예의 세계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호랑이를 통해서 자연의 세계를 사람 형상을 통해서 저자거리 세상을 되새겨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 고민과 고뇌를 계속 할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나를 이해해주고 지켜봐주는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 그지 없다. 보다 좋은 작품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에 오늘도 더 분발하여 끊임없이 흙과 싸우리라! 불과 교감하리라!
정녕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슬픔 안에서 거대한 희열을 느끼기에 똥마름도 배고픔도 인내하며 쓸쓸함이 뭍어나는 그 길을 오로지 간다.
이 곳 남쪽 바다 시퍼런 물결이 나의 고독이 혼백인 것 마냥 당당하게 파도 치리라. 자기 속에 깃든 순수한 영적교감을 통해서야만이 진정한 작품과 만날 수 있으리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쳐서 들어내는 것이리라. 기교나 기술의 문제보다 깊숙이 잠겨있는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진정성과 순수성이 작가생명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