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125번째, 기획초대전
125th anniversary Exhibition Scalatium Artspace,
by Kwak Sung Eun
PUZZEL & MATRIX
Artist. 곽성은 / KWAK SUNG EUN SOLO EXHIBITION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기획초대전
2016년 11월 18일 (금) - 12월 2일 (금) 상암
SCALATIUM ARTSPACE
opening reception : 2016년 11월 18일 17:30
01_Apple puzzle_02_100m_Acrylic_2016
눈속임이라는 욕망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우스(Parrhasius)는 누구 그림이 더 훌륭한지 견주어보기로 한다. 제욱시스의 그림은 포도를 실제와 너무나 똑같이 그려놓아 새들이 날아와 부딪칠 정도였다. 그런데 파라시우스의 그림은 커텐에 가리워져 있었다. 그의 실력이 궁금한 제욱시스는 얼른 커텐을 걷어보라고 재촉하고, 파라시우스는 자신이 그린 것이 바로 그 커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제욱시스는 새의 눈을 속인 자신보다 사람의 눈을 속인 파라시우스의 실력을 인정한다. 이 유명한 일화를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Jacques Lacan)은 ‘그림의 유혹’으로 설명한다. 새들은 포도를 먹고 싶은 ‘욕구’(besoin)에 이끌렸지만, 제욱시스는 보이는 것 너머를 원하는 ‘욕망’(désir)의 관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제욱시스가 이끌린 유혹은 파라시우스의 그림 실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대의 그림을 보고 싶었던 제욱시스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커텐을 걷으려 손을 뻗는 순간, 라캉이‘눈속임’(trompe-l’oeil)이라 명명한 욕망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02_cabbage_puzzle_20s_Acrylic_2016
곽성은도 제욱시스처럼 포도를 실제 포도처럼 그렸다. 그러나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는 먹고 싶고, 만지고 싶은 욕구의 덫으로만 기능했고, 곽성은의 포도는 보이는 것에 현혹되는 ‘미혹’(leurre)을 넘어선다. 실제 포도처럼 윤기나고, 물방울이 맺혀 있고, 잘 익은 빛과 색을 지닌 곽성은의 포도 앞에서, 우리는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보다 조금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작가가 포도 위에 쳐놓은 퍼즐이라는 덫 덕분에, 보이는 포도 너머를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도를 이루고 있는 퍼즐의 빈 부분을 채워넣어 하나의 상(image,像)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 또는 나머지 퍼즐 조각을 뜯어내어 포도라는 허상(illusion, 虛像)을 폭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곽성은은 제욱시스가 그리진 못했지만 사로잡혔던 욕망의 덫을 그의 포도 위에 펼쳐 놓았고,그리고 우리는 그 덫에 걸려든다.
03_Apple puzzle_03_162x97cm_Acrylic_2016
시뮬라크르의 반란
‘눈속임 회화’란 표현에서 보이듯이, 예로부터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그림들에 모두가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플라톤은 그림을 이데아(Idea)의 복제(copy)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이러한 시뮬라크르(simulacre, 模寫)들은 젊은이들의 이성을 흐리게 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뮬라크르는 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얻고 지위상승을 하게 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플라톤 철학이 시뮬라크르를 가짜 복사물로 정의하며 자신들의 글쓰기의 로고스(logos)를 정립하지만, 폭력적이며 술책적인 방법으로 로고스를 탈취하는 순간 그것 역시 시뮬라크르가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결국 들뢰즈에게 있어 원본과 복제, 이데아와 시뮬라크르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이것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된다.
04_Green apple_puzze_162X112cm_Acrylic_2016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도 ‘유사’(resemblance)와 ‘상사’(similitude)를 구별하면서, 원본과 일치하기 위한 닮음이 아닌, ‘차이’를 생산하며 다양하게 전개되는 상사의 유희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준다고 하였다. 푸코가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자세히 분석하고 마지막에 “캠벨, 캠벨, 캠벨!”이라고 외친 것도 팝아트가 보여준 상사의 유희를 결론으로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워홀의 캠벨 스프가 반복되어 제시되었던 것처럼, 곽성은의 동전도 행렬(matrix)을 형성하고 있다. 얼핏 보면 동일한 동전들의 반복 같지만, 이 동전들은 자기반복, 동일성의 산물이 아니다. 닮음보다는 ‘차이’를 생성 중인 계열들이다. 동전이라는 화폐는 소비사회, 자본주의, 교환가치의 상징이다. 동전으로 구성된 매트릭스는 그 너머에 넘실대는 물의 공간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가림막의 기능을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 정화와 치유, 우주론적 전체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두 차원의 만남이 제시된 곽성은의 그림에서 우리는 우선, 생명력이 역동적으로 표현된 물의 공간을 실제적인 세계로 읽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공적으로 주조된 화폐의 공간으로 그 실제성이 넘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물의 공간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에 표현한 ‘회화’라는 매체적 한계에 부딪히고, 레진 캐스팅 결과물인 동전이 가진 촉각성은 우리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전들도 실은 작가가 주조해낸 가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는 물도, 임의의 공간도, 심지어 생명까지 돈으로 다 사들이지만, 화폐가 만들어 놓은 우리 사고의 그물은 의외로 성글어서 틈을 생성한다. 바스라지고 삭아가는 동전의 모습들에서 어쩌면 이면의 것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 전복될 가능성이 떠오른다. 실재와 가상의 교환, 시뮬라크르의 끊임없는 유희는 이렇게 시작된다
06_Strawbgerry_puzzle_162x112cm_Acrylic_2016
퍼즐 맞추기와 해체하기, 그리고 빠져나가기
퍼즐조각들도 똑같은 모양으로 재단되어 있는 듯하나 딱 하나의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시뮬라크르들임을 말해준다. 차이를 생산하며 반복되는 시뮬라크르의 놀이에 퍼즐이라는 본래의 놀이행위가 더해져 이중의 유희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곽성은의 음식 퍼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몇 피스들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 중이며,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한 두 개씩 잘못 자리잡은 듯한 전혀 다른 색상의 피스들이다. 전자 회로, 컴퓨터 이진법을 연상시키는 디지털 이미지들로 되어있는 이 피스들은 사실 잘못 끼워진 조각이 아니다. 이 디지털 이미지가 과일의 씨앗 자리에 위치함을 보면, 이것은 여기에서부터 이 음식퍼즐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은 먹음직스러운 사과인줄 알고 다가왔으나, 이것은 사과가 아닌 사과퍼즐이었고, 그 중 이질적인 한 조각을 들여다보면, 그 조각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진 아날로그 페인팅이 아니라, 모든 것은 디지털 이미지에서 출발되었음을, 모든 것은 ‘가상’(virtual image, 假像)에 불가함을 말해준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대로, 이 곳은 가상이 실재를, 시뮬라크르들이 원본을 대체해버린 세상이다.
12_tangerine_puzzle_10s_Acrylic_2016
17_coffee puzzle_04_162x112cm_Acrylic_2016
사실 퍼즐과 동전 모두 소비의 상징이다. 돈으로 무엇을 맞바꾸든, 퍼즐놀이를 하며 시간과 능력을 낭비하든, 우리는 소비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이 소비의 세계에서 ‘욕구의 덫’에 빠진 이들은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의 그럴듯함(vraisemblance)에 현혹되어,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반대로 욕망의 덫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유방식이다. 이 곳이 아닌 저 너머에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하고, 의심하고, 빈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행동을 취한다.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가상 세계(matrix)에서 우리가 욕망하는 방법을 곽성은은 퍼즐 그림으로 제시한다. 나머지 퍼즐을 맞추며 완벽한 게임을 즐기든지, 퍼즐을 모조리 다 뜯어내어 바닥면을 확인하든지, 아니면 퍼즐의 빈 여백을 통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빠져나가든지 그것은 관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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