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세계와 후기인간
-Moonlight Mile
오상일(조각가, 아트스페이스 오 대표)
인간이나 동물 형상을 한 자동인형은 고대 그리스 시대 탈로스의 청동인간 이래로 뻐꾸기 시계나 시계탑 타종인형의 경우에서와 같이 끊임없는 호기심과 개발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문학작품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니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최초의 SF가 될 것이다. 그러다가 로봇이라는 기계인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921년에 초연되어 세계적으로 흥행한 까렐 차뻭의 연극 이다.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공격한다는 스토리는 미래세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대변한다. 이후에 발표되는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사이언스 픽션이 그리는 세계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등은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성공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기계인간들은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야기한다. 로봇, 오토마톤,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인공지능 등으로 불리우는 이들은 이미 픽션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보철과 인공장기가 신체기관을 대체하고 있고, 우리의 감각과 대뇌가 수행해 왔던 정보처리 기능은 상당 부분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과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정도 또한 날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인류는 자연으로서의 몸과 인공으로서의 기계를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체화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첨단 기술문명은 인간과 기계를 동종화하고 기계를 인체의 연장물로 간주하려 한다.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기계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을 생물학적 진화와 인공적 기술을 통합한 하이브리드적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세계를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대립항으로 보았던 데카르트적 이분법은 이제 무의미해 진다. 이들은 이른바 후기인간(post-human)으로서 생명, 나아가 인간존재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정의를 새로이 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신예 작가 이경원의 근작들이 보여주는 기계인간은 이러한 후기인간의 한 가지 모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전에서 연극적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Moonlight Mile”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달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거리, 즉 머나먼 길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도달하고자 하는 길은 오디세우스의 귀환과도 같이 멀고 험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 , 에서 보듯이 악몽같고 자기 모순으로 가득한 지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광활한 우주공간을 대안적 활동무대로 삼겠다는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 포효하는 호랑이 나, 우주선에서 냉동 상태로 잠들어 있는 청개구리의 은 작가 자신의 은유가 되고, 우주비행사 는 예술가의 초상이 된다. 여기서 청개구리는 매사에서 순응적이 아니었던 어린 시절의 작가에게 어머니가 붙여준 별명인데, 그가 즐겨 채택하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는 프라모델이라고 하는 플라스틱제 D. I. Y 입체조형물을 주재료로 선택한다. 프라모델을 구입하는 일반 소비자들은 생산자가 제공하는 조립 매뉴얼에 따라 인내심 있게 부품들을 조립해서 로봇, 게임 캐릭터, 전쟁무기 등을 완성하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이때 생산자는 이 세상을 운영하는 기존의 체제가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일반 대중을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길들이는 일종의 훈련이며 세뇌과정의 압축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열광적으로 사 모으는 프라모델의 매뉴얼은 현재의 세계질서와 지배체제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경원은 생산자가 정해 준 이러한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그 조립 규칙을 마치 말 안 듣는 청개구리처럼 제 마음대로 해체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경원의 기계세계는 밀도가 높고 정교하면서도 복잡하기 때문에 일견 미국의 작가 크리스 쿡시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쿡시와의 방법적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이경원은 <우주소년 아톰>이나 <에반겔리온>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란 세대로서 별 저항감 없이 기계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랐다. 쿡시 또한 <스타워즈>나 <트랜스포머> 등에서 드러나는 우주론 또는 존재론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성장한 70년대 출생 세대이다. 그러나 이경원과 쿡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자. 다만 쿡시의 경우를 해골, 성당, 기계부품 등 바로크 이미지와 산업사회 이미지들의 그로테스크한 조합이라고 정의한다면, 이경원의 경우는 오히려 기계와 미래세계를 현세에 대한 대안으로 보고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내러티브의 나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 쿡시의 조형적 전략이 신기한 볼거리를 통해 충격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이경원의 속내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존재조건에 대한 재고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경원이 프라모델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기계세계 속의 인간은 후기인간, 즉 post-human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때 post란 접두사는 전통적 인간상과의 단절이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리오타르가 일찌기 그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주장했던 해체 또는 재구성이라는 의미로서 이해해야 할 것같다. 종래의 SF가 보여준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극복하고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미래세계를 상상하고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