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기묘한 상상 전시장소: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상암점

아름답고 기묘한 상상 - CHOI EUN JIN SOLO EXHIBITION

최은진 / CHOI EUN JIN

전시기간 : 2015년 7월 31 (금) - 8월 14일 (금)

전시장소 :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상암점

산양Ⅰ_ceramic, wood_60×120×120(cm)_2014

현대인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지만, 인간의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은 또다시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사회의 제도 속에 점점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에 의해 길들고 가축화된 초식동물의 모습과 닮아 있다. 편리한 도시에 모여 살며 풍족한 자원을 확보한 현대인들의 모습은 군집생활을 하며 풍족한 식량을 가지고 있는 초식동물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산양Ⅱ_ceramic, wood, steel_60×60×127(cm)_2015

초식동물 중 양 · 염소 · 라마 · 알파카 · 토끼를 선정하고, 그들이 가진 이미지를 도출해내, 현대인의 삶을 상징하며 형상화한다. 초상조각의 두상표현 형식을 빌려 ‘동물 초상조각’으로 표현 하였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듯이, 흙(점토)과 가마(굽는 행위)를 이용해 정화되고 싶은 인간의 순결한 본성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받침대에 제단의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 삶의 죄를 씻고, 내적 치유의 목적을 두었다. 또한 동물이 지닌 형태와 환경을 암시하며, 무대이미지로 공간연출 하여 작품의 일부로 표현하였다. 작품을 통해 수동적이고 타 지향적 삶이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인식하고, 사회적 성찰도구가 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 작가노트 / 최은진작가

라마(Llama)_ceramic, wood, wheel_37×37×120(cm)_2014

아름답고 기묘한 제의

신은 흙을 빚어 그 안에 호흡을 불어넣으면서 생명을 창조했다. 하지만 호흡을 얻은 자들 중 일부는 폭력을 행사하며, 이 세계를 무질서의 상태로 만들었고, 그 무질서를 다시 그들을 위한 새로운 질서로 개편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된 기나 긴 일련의 시간을 역사라 부른다. 물론 이러한 폭력의 과정은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켰고, 견고하게 굳어버린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집단의 탄생에 일조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속에는 몫 없고 힘없는 존재들을 향한 착취와 억압의 과정이 은폐되어 있음을.

염소Ⅰ_ceramic, wood_37×37×110(cm)_2014

작가 최은진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목격한 것은, 자연과 자유의 영역에 속하던 것들을 길들이고, 자신의 영역 안에 가둔 인간의 욕망이었다. 물론 그 욕망은 일차적으로 다른 종(동물)을 가축화하는 데 발휘되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동종의 인간을 무력화하면서 노예로 만들고, 심지어는 살해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싸움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동족을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잔혹한 폭력성은 결국 역사의 암울한 구멍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근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이르면서, 이러한 착취와 억압의 기제는 경제구조와 더욱 긴밀하게 얽혀들었고, 더 차갑고 세련된 방식으로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최은진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동물의 가축화 과정에 주목하였고,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 인간을 대상으로 더욱 교묘하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양, 염소, 라마, 알파카에서 인간에 이르는 두상들을 흙으로 빚어 구워낸 작업에서 엿볼 수 있다.

바야흐로 새로운 계급이 굳건히 자리잡은 때이다. 신자유주의를 통한 보이지 않는 손(자본)의 새로운 부활. 그리고 그것에 의해 개성과 인간성이 말살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 최은진의 작업의 핵심은 분명 여기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에 더해 그녀의 작품에는 또 다른 몇 가지 해석의 키워드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1) 희생양과 2) 연극성이다.

염소Ⅱ_ceramic, wood_37×37×110(cm), 2014

알파카Ⅰ_ceramic, wood_37×37×110(cm), 2014

최은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초식동물의 두상은 제의에 등장하는 제물, 즉 희생양을 연상시킨다. 희생제의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펼친 바 있는 프랑스의 평론가이자 사회학자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동종을 향한 끊임없는 욕망을 품고, 서로를 경쟁자로 삼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은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생양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는 공통의 압축된 폭력성을 하나의 대상 안에서 폭발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로 인해 내부적인 폭력은 완화되고, 파괴적인 분쟁의 가능성 또한 잠식되며,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상태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때 선택되는 대부분의 희생양은 그들의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대상들로, 연약한 자(초식동물, 권력 없는 인간)이거나 최고의 권세를 누리다 추락한 지도자일 확률이 높다. 지라르는 이와 같은 희생양이 사회를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최은진의 작업에서 여러 초식 동물의 두상은 몸과 분리된 채, 제단과도 같은 단상 위에 겸허히 놓여 있다. 그 두상의 표정은 마치 인간의 세계(혼돈)와 신의 세계(평화)를 연결하는 전령(헤르메스)처럼 비현실적이고 온화하다. 이에 더해 작가가 채택한 여러 장치는 이들에게 더욱 초현실적인 힘을 불어넣고 있다.

라마Ⅱ_ceramic_30×40×60(cm)_2014

알파카Ⅱ_ceramic_30×38×60(cm), 2014

그럼 이제 두 번째 키워드인 '연극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최은진의 작업에는 정지된 사건이 아니라 유기성을 띠며 발전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와 같은 연극성은 여러 형태로 등장하는 단상(제단)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박스형 단상은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의 정면이 아닌, 측면과 후면을 나타낸다고 한다. 즉 거대한 역사적 사건 뒤에 가려진 수많은 존재들의 미시적 사건들이 작업의 정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은진은 이처럼 전복된 무대 위에 여러 두상을 배치함으로써, 더욱 미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미감과 연민을 동시에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보이지 않는_ceramic_27×27×196(cm), 2015

살피다_ceramic, mixed media_각 18×18×40(cm)_2015

무제_ceramic_30×30×48(cm)_2015

가변설치_아름답고 기묘한 제의_2014

신이 흙을 빚어 호흡을 불어넣은 것처럼, 작가는 흙은 빚어 그 안에 많은 이야기들을 불어넣는다. 물론 신의 숨결처럼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지는 못하더라도, 작가의 메시지는 우리 세계를 축소하여 드러내며, 때로는 고민과 사색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은진이 불어넣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과거의 희생양이 자아내는 비릿한 연민일까? 비자발적으로 익숙해진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 매커니즘일까? 아니면 미래에 도래할 잔혹한 새로운 질서일까? 이 세 가지가 모두 그녀의 작업 속에 농밀하게 녹아있기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재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 평론 / 김지혜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