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안의 기억
김찬경展 / KIM CHA NKYUNG / 金燦璟 / 혼합재료
2012_04.24 ▶ 2012_05.07
세상의 기억은 모두 다 아름답다. - 1. 사물의 의미 그리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손소화의 작품은 우리 옛 가구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는 모란이 피어나고 소소한 일상의 기물들이 중첩되어 있다. 사유의 여백을 남기고 일상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의 의미들을 기억하며 자리한다. 작가의 작품은 할머니와 작가가 함께 살아 온 삶의 향기와 추억들이다. 작가가 그리는「기억의 층」,「그녀의 향기」,「기억의 탑」,「자라나다」와 같은 일련의 시리즈들은 할머니와의 기억속에서 사유되고 확장된 이야기이다. 이들에서 보여주는 오래된 자개의 화장대, 목가구, 경상과 같은 가구들은 할머니가 간직해 온 기억의 물건들이며 또한 과거, 전통에 관한 작가의 관심이기도 하다. ● 장지에 분채로 채색한 작품들은 전통 민화가 가지고 있는 평면성과 단순성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작가의「기억의 탑」시리즈들은 책가도의 구축성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경상과 방석, 책, 보석함, 인형과 같은 아래에서 위로 쌓아 올린 일상의 기물들에는 평면적인 시선을 보내며 서구의 일점 투시도를 제거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처리의 방식은 개개의 사물들이 하나의 독립된 형태를 갖게 되며,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게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 작가는 이러한 전통의 구도법 속에 고가구의 면과 면이 가로지르는 사이로 자신이 꿈꾸는 안락한 방을 그려나가고 있다. 인형이 올려 진 작은 침대, 기억속의 소품들이 빼곡히 들어앉은 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거나 다시 살아나, 끝나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손소화의 작품에는 따뜻한 삶의 기억과 꿈, 그리고 휴식과 같은 정신으로 향해 나아가는 삶의 내용이 들어 있다. ● 이러한 작가의 조형에는 내밀한 방과 그 속에서 휴식을 맛보는 아니마(Anima), 고향, 어머니의 품과 같은 인간이 희구하는 위안과 같은 정신성이 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공간을 구획하는 가구, 그 가구를 통해 드러나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 그리고 그 품을그려나가며 기억되는 과거, 고전으로의 그리움이 드러난다. 그러한 그리움은 비단 과거로의 기억에 관한 회고의 단계가 아닌 우리의 지난 과거, 우리의 정체성과 근원에 관한 탐색이며 고민이기도 하다. ● 또한 작가가 할머니의 추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과거로의 탐색, 근원으로의 고민은 작가 자신이 잃어버린 과거와 지 않은 미래에 관한 사유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작가의 자아, 유년기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으로서의 과거이며 추억이며 기억인 것이기도 하다.
2. 안과 밖의 교감 그것은 자라나는 풍경 ● 작가의 작품에는 향기가 있다. 그것은 아침이슬이 머문 상큼함이며 오래된 고소함이다. 이는 삶의 오랜 부분을 함께한 소중한 존재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사유의 확장에서 얻은 정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에는 레비나스(Levinas)가 말하고 있는 물리적 부재에서 획득하게 되는 정신적 현존(現存)이 드러나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존재의 부재는 보이지 않는 정신으로 승화되어 작가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현존의 대상(할머니, 추억, 유년기)은 끊임없이 작가와 관계하고 우리에게 무한의 상상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아직도 작가에게는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 관계하게 되는 체화(體化)되고 육화(肉化)된 마음의 근원이기도 하다.
● 작가가 보여주는 푸른 허공위에 떠 있는 초현실적인「자라나다」시리즈는 작가의 부재가 현존으로서 끊임없이 교감하고 생명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이는 내밀한 자아의 기억과 휴식으로의 희구와 소망이 정신의 외부, 그를 둘러싼 환경, 범우주적 생명의 흐름과 교감하고 안과 밖이 변증법적으로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물과 나무나 꽃, 식물과 같은 생명이 결합하고 구성되는 것은 이러한 기억의 변증법적 메커니즘을 가시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 사실, 휴식, 위안, 따뜻함과 같은 정신의 아니마와 관계하는 작용들은 모두 내밀한 자아와 환경으로서의 밖, 주체와 타자, 자아와 우주가 서로 교감하고 생명을 갖고 살아 숨 쉬고 있음은 서구철학이나 동양철학에서 이미 이야기하고 있는 바이다. 따라서 작가의 조형은 기억에서 출발한 내밀한 자아의 추억들이 휴식과 아니마에 관한 희구를 드러내며 생명을 획득하고 자라나는 일련의 논리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 손소화의 작품에는 전통의 민화가 가진 평면성과 구축법이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책가도 모란도와 같은 전통의 정물화의 내용과 모티브들이 차용되고 있다. 그 속에는 부재로부터 아직도 계속되고 오지 않은 미래에도 관계하고 작용할 소중한 추억, 기억의 현존에 관한 사유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넓은 여백과 명료한 형태의 운용에는 대상을 본질로 끌어올리고 정신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조형이 돋보인다. 그 속에서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기억과 자아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난 손소화의 작품은 정겨움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세상의 기억은 모두 다 아름답다고 작가는 증언하는 듯하다. 전통과 일상의 소재들이 만나 무한한 이미지의 확장과 구축을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들이 위안과 휴식, 치료로서 정서적 타르시스가 앞으로 기대가 된다 하겠다. (2012.12) ■ 박옥생
사람들은 모두 사물에 대한 기억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 사물들은 사람들 각자의 각기 다른 경험들을 통해 기억되어질 것이고 이들은 서로 마찰되어 때로는 사물의 인식이 본래의 가진 성질이 아닌 개인이 규정한 의미로 재해석되거나 넓은 의미로 확장이 가능해 질 수 있다. ● 어떠한 장소나, 공간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대상이나 장소를 보고도 각자 다르게 인식하고, 이해하며, 기억하는 것처럼 개인에게 있어서 공간은 자신만의 사적인 세계로 남을 수 있다. 본인은 이러한 사물이나 공간에서 얻은 개인적인 기억들을 이미지로 구조화 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하여 세월의 흐름 속 섞여져버린 시간을 반영해 본다. ● 본인의 작업은 할머니와의 특별한 관계 속, 추억에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같은 '방'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20여년 넘게 가장 가까이에서 본인의 성장을 지켜봐주신 할머니와의 관계는 특별하다. "잠이 들 때나 깨어날 때마다 언제나 귓가에 들리던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가장 소중하고도 따뜻한 기억이다. 그 속에는 언제나 당신보단 다른 사람들이 먼저였고,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주문과도 같이 들렸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함께 하던 방안엔 이젠 늘 소중히 아끼시고 좋아하시던 물품들만 자리했다. 속옷 한 벌도 직접 만들어 입으시던 할머니셨기에 그 물건들은 그녀를 대신하는 듯 했고 곳곳에 놓은 삐뚤빼뚤한 민화 자수들은 마치 나의 복을 바라고 남의 행운을 빌어준다는 할머니의 기도와도 많이 닮아있었다." ● "할머니와 함께했던 우리의 방안은 참으로 독특했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침대 위 색동무늬의 두터운 솜이불, 오래된 화장대 앞 참빗과 화려한 향수병들, 핑크색 벽지 위 덕지덕지 붙은 문풍지, 커튼 밑 요강까지 소녀와 할머니가 함께하는 방안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결합이 여성들의 공간이라는 '어울리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마치 나와 할머니의 세대 간의 모습을 의인화 해놓은 듯한 모습들의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결합이 어우러져 하나의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 혼돈된 그 시간들의 축척이 모여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노트 중) ● 기억이 현재의 지각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강력하다. 현재의 본인은그렇게 축척된 시간속에서 성장하였고, 본인도 모르는 내면의 감정이나 감성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선명하지 않거나 혹은 잊혀진 기억일지라도 나의 무의식속에 자리하는 기억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 손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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